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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윤석열 당선자는 그리스행 열차의 기수를 돌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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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윤석열 당선자는 그리스행 열차의 기수를 돌려야한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3.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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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누가 되든 문재인 유산으로 차기정부는 독박
공약 지킨다고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워서는 안돼
ⓒYTN 캡처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여의도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소감을 밝히고 있다. ⓒYTN 캡처

개표 내내 피 말리는 초박빙의 접전 끝에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가 제 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로써 정권교체의 열망은 이루었지만 윤석열 정부의 앞길은 순탄치 못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는 ‘독박’을 쓸 수밖에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확장과 방만한 재정 운용의 부담을 떠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눈덩이처럼 불어난 나라 빚은 차기 정부에 큰 짐을 지울 것이다.

나라 빚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관성이 더 큰 문제다. 정부도 국민도 돈 잔치에 한번 맛을 들이고 나면 그 습성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끊기보다도 더 힘든 일이다. 그렇더라도 다음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런데 그건 국민에게 고통을 감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넘길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쉬운 일이 아니다.

윤석열은 ‘미래를 바꿀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음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를 바꾸려면 무엇보다도 재정운용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얼마 전 칼럼에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병들어가는 영국을 되살려낸 얘기를 한 바 있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도 레이건 대통령이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자유시장경제 정책을 펼쳐 사상 최장의 호황을 구가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이처럼 나라를 살린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멀쩡한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지도자도 많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이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두 나라가 다 그렇지만 지도자 한번 잘못 선택했다가 순식간에 쫄딱 망한 극적인 사례는 그리스다.

그리스는 서양문명, 현대문명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지금까지도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를 제공해주고 있을 정도로 오랜 문화의 나라이기도 하고, 고대에 이미 민주주의를 구상하고 실천했으니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도 잘 나갔었다.

그런 나라가 갑자기 몰락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8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당’이 집권하면서다. 파판드레우는 집권하자마자 보편복지와 정부개입 강화, 공공부문 확대 등의 정책을 폈다. 문재인 정부가 걸어온 길과 유사하다.

그간 문재인 정부 정책기조에 대해 사회주의 운운하면 다들 펄쩍 뛰며 구태적인 색깔론 쯤으로 치부하곤 했는데, 큰 정부와 공공부문 확대, 보편복지 등이 다 사회주의적인 요소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리스가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파판드레우가 집권할 당시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였고, 그리스의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28%에 불과했다. 실업률도 3%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전 5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5%를 상회했다. 한 마디로 모범국가였다. 그러다가 파판드레우라는 무책임하고도 부도덕한 지도자를 만난 것이다.

파판드레우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해주겠다”며 국민의 환심을 사려 했다. 스위스 같은 나라였다면 파판드레우는 국민의 심판을 받아 곧 정권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은 파판드레우에게 열광했다. 그러다 보니 우파정당조차 대중인기영합주의에 호소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잔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파판드레우가 10여 년에 걸쳐 딱 두 번 집권한 결과, 그리스는 모범국가에서 빚쟁이 나라로 전락했다. 생산에 참여하는 국민은 갈수록 줄어들고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국민이 늘어간 데다가 복지 규모도 갈수록 커졌으니 나라가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경제가 후퇴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2020년 기준 1만7676달러로 곤두박질쳤다.

파판드레우 집권 기간 동안 국민 4명중 1명은 공무원이었고, 2명 중 1명은 공공부문 소속이었다. 이들은 퇴직 후에도 재직 당시 급여의 85%를 받았다. 나라가 거덜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이후 걸핏하면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론이 불거져 나오곤 했다. 그리스는 그야말로 EU의 골칫덩어리였다.

EU와 IMF의 구제금융으로 버텨왔던 그리스가 근래 겨우 만성적인 위기국가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다. 그동안 그리스 국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장담하기엔 이르다. 무엇보다도 빚 내 잔치판 벌인 대가에서 제대로 교훈을 얻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라고 다를 수 없다. 그리스 꼴 나지 않으려면 다음 정부는 대선 공약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을 감수할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공약을 지키는 것보다 국민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공약 지킨다고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워서는 안된다. 물론 소상공인 지원과 보상은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만이어야 한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들이 외상이라는 덫에 걸려들기 쉽다는 말인 동시에 외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경구다. 외상을 경계해야 함은 개인이나 국가나 똑같다.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직 국가채무의 여력이 충분하다는 주장을 곧잘 한다. 문재인식 돈 풀기를 옹호하며 다음 정부도 그래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정부에서 국가채무를 GDP 대비 40% 이내로 억제해온 것을 무너뜨리며 불과 5년 만에 10% 포인트가 넘는 50% 이상으로 올려놓은 결과가 무엇인가를 따져 보라. 무엇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그리스가 보여주었듯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건 순식간이다. 문재인 시즌2 한 번이면 그땐 우리가 이미 지옥문 안에 들어서 있다고 보면 된다.

아이러니는 파판드레우가 경제학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하버드대학교 강사를 거쳐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그런 사람이 왜 경제를 망치는 길로 그리스를 이끌었을까. 경제학이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할 때 파판드레우는 인간의 속성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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