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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죄악은 '유토피아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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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죄악은 '유토피아 망상'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2.02.0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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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소주성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모두 환상
정의 말하는 정치인들에게 정의 기대해서는 안돼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문재인·이재명 페이스북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문재인·이재명 페이스북 캡처

설 연휴 밥상머리 여론은 어떻게 모아졌을까. 연휴 직전까지의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오차 범위 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윤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결과를 보여주는 일부 여론조사도 있었지만 최후의 승자가 누구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권 재창출보다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여론이 높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문재인 정부 5년이 총체적 실패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부동산 정책과 일자리 정책의 실패는 여권으로서 참으로 뼈아픈 것이라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여권의 이재명 대선 후보마저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차별화에 나서고, 송영길 대표가 이재명의 당선도 정권교체라고 했겠는가.

하지만 이재명 후보나 민주당은 문재인정부 실패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건 윤석렬 캠프 역시 마찬가지다. 개별적인 정책 실패만을 파고들 뿐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문재인정부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유토피아의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토피아란 그 말의 어원에서부터 드러나듯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가능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니 실패는 필연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기치를 내걸었을 때 이미 그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발상이라니. 그것이 어이없는, 그래서 부작용만을 부를 것임을 지적하는 경고가 잇따랐지만 문재인 정부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유토피아의 환상에 젖어 있는 얼치기 경제 전문가들은 점령군처럼 기세등등했고, 여권에서는 아무도 그들의 신념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유토피아 신봉자들의 말에 솔깃해서 맹목적인 신자가 되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얼핏 듣기에 참으로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근로자들의 소득을 높여주면 소비가 진작될 것이고, 그에 따라 기업의 생산도 증가할 것이며, 이러한 선순환이 계속되면 전체적으로 경제가 발전할 것이라니! 이 얼마나 달콤한가.

하지만 세상이 그리 간단하던가. 세상 이치는 복잡다기하다. 그건 인간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인간 개개인의 심리가 상호작용하는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런 것을 단순 무식하게 정의 내리고 그에 맞추어 정책목표랍시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터무니없는 깃발을 올렸으니 그 결과는 빤한 것 아니겠는가.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누군들 비정규직을 좋아할까. 그래서 비정규직 제로를 외치며 금방이라도 비정규직 없는 세상, 차별 없는 세상을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밀어붙였지만 엉뚱하게도 노노갈등이 빚어지지 않았던가.

기업들이 괜히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게 아니다. 한번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해고가 불가능하니 불가피하게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의 양산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탓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간단한 이치를 무시한 채 비정규직 제로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서서 선무당 사람 잡는 꼴을 연출한 것이다.

이 밖에도 최저임금을 왕창 올려서 오히려 고용을 줄인 것이나 주 52시간제 근로의 강제로 중소기업들을 벼랑으로 내몬 것 등이 다 유토피아의 환상에 함몰된 데서 빚어진 참상들이다.

거듭 지적하지만 세상에 유토피아라는 피안의 언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유토피아를 만들겠다고 시도한 게 바로 사회주의다. 사회주의란 ‘인간의 계획에 의해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 할 수 있는데, 그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지적한 바 ‘치명적 자만’이었다. 그것이 입증되는 데 한 세기를 소모하면서 수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도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라지지 않고 신봉자들에게 내면화되었다. 그건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결코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평등한 사회, 차별 없는 세상을 내세울 뿐이다. 그리고 정의를 말할 뿐이다. 하지만 그건 수사(修辭:rhetoric)에 불과하다.

단언컨대, 정의를 말하는 정치인들에게 정의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인일수록 서민들을 곤경에 몰아넣는다. 그들이 위선자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고 거기에 맞게 정책을 설계했다면 문재인 정부의 실패도 없었을 것이다.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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