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4-04-28 04:15 (일)
[김용춘의 Re:Think]'명동 버스대란'이 드러낸 공무원 고질병 3가지
상태바
[김용춘의 Re:Think]'명동 버스대란'이 드러낸 공무원 고질병 3가지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1.16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ㆍ김용춘 한국경제인협회 팀장/법학박사

①책상머리 입안-결재 ②규제 만능주의 ③근시안적 사고
교통, 교육, 경제, 산업 공청회 말고 현장서 수시로 뛰어야
서울시는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소에 노선 표시 안내판(왼쪽 사진 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한 뒤 오히려 퇴근길 차량 정체가 심해지자 표지판 운영을 이달 31일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소에 노선 표시 안내판(왼쪽 사진 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한 뒤 오히려 퇴근길 차량 정체가 심해지자 표지판 운영을 이달 31일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한심한 아이디어” ... 명동 ‘버스대란’ 부른 대기판 9일 만에 운영 중단. 지난 1월 6일자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시민들 안전을 위하겠다며 시행한 정책이 반대로 퇴근길 대혼란을 부르면서 시민 불편과 안전을 더 위협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이 제도를 도입한 과정은 충분히 짐작된다. 아마 “퇴근 시간대 버스가 인근 도로나 횡단보도에서 승객을 태워 안전에 문제가 있다. 해결방안을 제시하시오”와 같은 시험문제였다면 상당수 응시생들이 제출할만한 아이디어였다. 명동입구 정류장 정책은 시험답안으로써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 성적은 빵점. 결국 오세훈 시장이 직접 사과하고 9일 만에 정책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전형적인 탁상공론으로 보인다. 기안한 사무관이나 결재한 과장, 국장 모두 책상에서 구상하고, 보고하고, 승인했을 것이다. 고작 버스정류장 하나 개선하는 문제였으니 그 누구도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 같지 않다. 일부에서는 ‘시범 운영이나 시뮬레이션이라도 좀 해보고 하지’라고 말하지만 그 비판 또한 탁상공론이라고 본다. 이게 무슨 서울시 전체 버스 정류장 개선사업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자원을 투입하기가 쉬웠겠나. 이런 작은 일도 다 시뮬레이션 돌려서 결정하라고 하면 안 그래도 느려터진 행정 속도는 더 느려질 것이 뻔하다.

김용춘 한경협 팀장/법학박사
김용춘 한경협 팀장/법학박사

단순히 시장이 사과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이 사태가 벌어진 본질을 봐야한다고 본다. 첫째는 당연히 탁상공론이다.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는 법. 그러나 답을 책상머리에서 찾았으니 제대로 돈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는 규제 습성이다. 국회나 공무원들은 문제가 생기면 습관적으로 규제를 만든다. 오죽하면 산업현장에선 “사고 1개 나면 대책은 규제 10개다”라고 할 정도다. 교통사고가 생긴다는 이유로 제한속도를 줄이고, 우회전 할 때는 무조건 멈추도록 해서 안 그래도 막히는 도로가 점점더 막힌다. 

예를 들어 3차선 도로에서 대부분 3차선은 직진과 우회전을 공유한다. 그런데 직진신호가 걸리면 바로 우회전 쪽 보행신호도 동시에 켜지면서 사실상 3차선은 마비가 된다. 때문에 3차선에 있던 직진 차량들이 2차선으로 변경 시도를 하면서 도로가 꽉 막혀 버린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접촉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신호체계나 건널목 위치를 조정해 가면서 차츰 바꿨어야 하는데 획일적으로 바꾸다보니 생긴 혼선이다.

셋째는 근시안적 사고다. 정책을 입안할 때 오직 해당 문제 해결만 신경쓴다. 다른 부작용, 파급효과 이런 걸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도 시간에 쫓기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려면 현장 경험이 풍부해야하는데 현장과 떨어져 있으니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공무원들이 책상을 박차고 나와 현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교통 뿐 아니라, 교육이든, 경제든, 산업이든. 형식적인 공청회 말고 현장에서 수시로 뛰어야 보석같은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에는 필자가 경험했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 화학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처음 공장 현장 노조원들 방문했을 때 이야기다. 한 노조원이 “여기 폐수처리 시설에서 냄새나서 일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CEO는 담당팀장에게 맞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자 CEO의 해법이 걸작이었다. “그럼 팀장 책상을 일주일간 현장으로 옮겨서 근무한 후 다시 보고하세요”였다. 이 문제는 단 3일만에 해결됐다. 팀장이나 노조원 어느 한쪽 편을 든 것도 아니다. 솔로몬의 판결같은 해법을 낸 비결이 뭘까. 만명이 넘는 직원을 이끄는 이 CEO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평사원 출신이라는 것이 하나의 답이라면 답일 것 같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