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4-05-03 01:55 (금)
[김용춘의 Re:Think]외계인 시험으로 전락한 킬러문항 없애는게 정답이다
상태바
[김용춘의 Re:Think]외계인 시험으로 전락한 킬러문항 없애는게 정답이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7.04 06: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ㆍ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팀장/법학박사

국어라면 문법이나 국문학, 한글 문해력 등을 평가해야
시험이 아니라 학생에 대한 기만행위요, 학부모에 대한 갑질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달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킬러문항’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름마저 섬뜩한 킬러문항이라는 단어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아마 아주 풀기 어려운 고난이도 문제를 일컫는 모양이다. 사실 교육 전문가가 아닌만큼 웬만하면 킬러문항을 주제로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교육이 이미 사회적 이슈로 크게 대두된 상황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녀를 3명 둔 학부모로서, 그리고 교육공무원 가족의 일원으로서 펜을 드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새 학생들 사이에서는 국어 과외는 절대 필수라고 한단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도저히 수능 국어를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 수학이 사교육 우선순위일 줄 알았는데 꽤 의외였다. 그래서 기사를 좀 찾아보니 작년 수능 국어가 역대급으로 어려웠다고 한다. 국어 과목을 중심으로 한 ‘불수능’으로 인해 학교 수업만 충실히 따라간 학생들만 바보가 됐다. 국어 시험은 국문학 전문가도 못 푸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이게 도대체 시험을 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듣자하니 헤겔의 변증법, 트레필 딜레마, 브레턴우드 체제 관련 지문은 배경 지식없이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였다고 한다.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정도로 난해한 지문이 나온 줄은 상상도 못했다. 능히 국어라면 문법이나 국문학, 한글 문해력 등을 평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시험이 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기만행위요, 학부모들에 대한 갑질이라고 본다.

어쩐지 요새 학원에 들어가는 것이 어찌나 경쟁이 심한지, 학원들어가려고 시험까지 보더라. 우리 아이들도 학원 입학시험을 봤더니 성적이 상당히 낮게 나왔다. 학교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라 좀 의아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더니 “아빠 학원 시험 문제가 말도 안되게 어려워. 배우지도 않은 게 막나와. 무슨 외계인 시험 같아”라고 했다. 겉으로야 “처음이니까 그래. 학원 다니면 쑥쑥 올라갈꺼야”라면서도, 내심 ‘공부 열심히 안해서 그런 거 아닐까’라고 살짝 의심했었다. 하지만 킬러문항이 횡횡하는 황당한 입시환경을 알게 되니, 갑자기 살짝 의심했던 내 자신이 미안해 졌다.

우리모두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도대체 시험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학교수업을 충실히 이해했는지, 그래서 대학에서 충분히 공부할 역량이 되는지 평가하는 잣대아닌가? 만일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은 것을 시험에 낸다면, 이것은 누가 비싼 학원을 많이 다녔는지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뿐이다. 이것이 대학입학시험 제도가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면 킬러 문항은 부작용 덩어리다. 우선 공정하지 않다. 강남의 유명 학원을 다닐 수 있는 학생들에게만 유리한 제도이니 시작부터 불공정 그 자체다. 평범한 학생들의 학습의욕도 저하시킨다. 강남 학원을 다닐 수 없는 학생들은 학교 수업 과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문제를 맞출 수 없으니 공부할 맛이 나겠나. 공교육 붕괴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현상이 고착화 되면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양극화도 심해질 것이다. 부모 잘못만난 것이 죄가 되는 사회,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긴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 “킬러 문항은 처음부터 교육당국이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말한 윤 대통령의 분노에 적극 공감한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방고등학교 출신에 교과서 위주로 열심히 공부했을 뿐이라는 서울대 수석합격자 인터뷰가 종종 나왔었는데, 2000년대 이후에는 거의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언젠가 부터 개천에서는 용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다. 물론 조국 전 장관을 비롯한 일부 진영에서는 “모두가 개천의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라고 옹호하기도 하지만, 절대 동의하지 못 하겠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내가 태어난 곳이 개천이든 강이든 바다든, 희망의 날개를 마음껏 펼쳐 훨훨 날 수 있는 공정한 사회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 첫 단추는 킬러문항 폐지라고 본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som 2023-07-04 11:43:32
헤겔 지문 작년 고2 독서 시간에 학교에서 풀었는데요?
사교육 받은적 없고 기출만 풀면서 공부해서 다 맞췄습니다
대체 사교육 없이 못푼다는 기준이 뭔가요?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