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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튀르키예가 남의 일일까” 대한민국 정치인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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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튀르키예가 남의 일일까” 대한민국 정치인에게 묻는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2.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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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콜롬비아의 화산폭발도 가즈안테프의 대지진도 인재 참사
재난을 당리당략으로 이용 말고 미래를 위한 대비 세워야
지난 7일(현지시간)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동생을 보호하는 한 소녀. 사진은 @AlmosaZuher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지난 7일(현지시간)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동생을 보호하는 한 소녀. 사진은 @AlmosaZuher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튀르키예 가즈안테프 대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지붕에 깔린 어린 소녀가 동생을 살리기 위해 동생의 머리를 껴안고 어깨로 힘겹게 17시간이나 지붕 잔해를 떠받치며 버티는 모습은 전 세계를 눈물 짓게 했다. 다행히 남매는 구출됐다. 이 일화는 1985년 11월 13일에 벌어진 콜롬비아 네바도델루이스 화산 폭발 사고 당시 죽어간 오마이라 산체스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13살이었던 오마이라는 두 다리가 콘크리트에 낀 채 흙탕물에 온몸이 잠겨 간신히 얼굴만 수면 위로 내민 모습으로 구조대에 발견됐다. 소녀는 화산 폭발 사흘만에 숨졌다. 죽기 직전까지 어떻게든 다리를 빼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구조대에게 “좀 쉬었다 오세요”라고 권하는가 하면 “그저께 수학시험이 있었는데 보지 못했네요”라고 말해 곁에서 지키는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2015년 9월 2일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힌 3살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은 난민들에게 굳게 닫힌 유럽인들의 마음을 열게 했다. 튀르키예의 무글라시 보드룸 해변에 몸이 반쯤 잠긴 상태로 죽어간 쿠르디에게서 100여m 떨어진 곳에는 5살인 그의 형 갈립의 시신이 있었고 이들은 모두 구명조끼나 튜브 하나 없는 맨몸이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즉시 뛰어드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함도 아니오, 그런 행동으로 칭찬을 받기 위함도 아니며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비난을 받는 것을 저어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러한 생각을 할 틈조차 없이 행동에 나서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것으로 여겨 함께 아파하는 마음 즉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기 때문이다,

측은지심은 재난의 고통 속에서 다시 살아갈 희망의 불씨는 될 수 있어도 재난을 미리 막지는 못한다. 재난은 인간이 받아야할 숙명이 아니다. 위에 언급한 사례는 그저 천재지변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콜롬비아 네바도델루이스 화산은 폭발 2개월 전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정부도 주민대피 계획을 세우기는 했다. 그러나 폭발의 위력을 너무 가볍게 판단했다.

참사 당일 오후 3시 무렵 검은 화산재 폭발이 시작됐다가 5시 무렵 잠잠해졌다. 당국은 주민들에게 “침착하게 집 안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고, 화산재 폭발이 저녁 7시 무렵 재개된 뒤에야 대피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정전 사태로 아르메로 주민들에게 그 소식은 제때 전달되지 못했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천둥소리에 섞여 화산 폭발음을 제대로 듣지 못해 주민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어떤 재난도 비극의 단초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번 가즈안테프의 대지진도 수개월 전 전문가들이 “멀지 않아 지진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정부 당국은 무시했다. 24년전 튀르키예는 이번 대지진과 맞먹는 진도의 대지진을 겪었다. 1999년 8월 17일 튀르키예 이즈미트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지진으로 인해 1만 8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튀르키예에 거주했던 영국 지질학자 데이비드 브루스는 "이즈미트 지진으로 이번에 붕괴된 건물 대부분은 70~80년대 건립된 것으로 바닷모래, 녹슨 철골 같은 부실자재를 썼으며 일부는 취약한 지반 위에 세워졌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연구결과를 통해 부실하게 지어진 주택들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튀르키예에서 규모 7.8과 7.5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한 지난 6일(현지시간) 인접한 시리아 알레포주 아프린시 잔다리스의 붕괴한 건물 잔해에서 시민들이 다친 여자아이를 구조하고 있다. ⓒ잔다리스[시리아] AFP=연합뉴스
튀르키예에서 규모 7.8과 7.5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한 지난 6일(현지시간) 인접한 시리아 알레포주 아프린시 잔다리스의 붕괴한 건물 잔해에서 시민들이 다친 여자아이를 구조하고 있다. ⓒ잔다리스[시리아] AFP=연합뉴스

이 지진을 계기로 튀르키예 내에서 부실공사 문제가 대두되었고 튀르키예 정부는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정부는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이때부터 지진세를 거두기 시작, 지난 24년간 누적된 지진세 규모만 약 880억 리라(약 5조9000억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오지만, 그 예산을 어디에 썼는지 에르도안 정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비상 계획·관리를 연구하는 데이비드 알렉산더 교수는 가즈안테프 지진 피해에 대해 "매우 강한 지진이었지만, 내진 설계에 충실한 건물이었다면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진동 수준이 기준 최댓값보다 낮았다. 건물 수천 채가 무너졌다는 것은 거의 모든 건물이 내진 설계에서 가정하는 합당한 범위의 진도에도 견디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1999년 대지진과 2023년 대지진의 엄청난 피해의 원인은 ‘복붙’ 수준이다. 거둔 세금을 원래 목적대로 내진 설계가 적용되는 건물 짓는데 썼다면, 관련 법규에 따라 철저히 감독하고 위반한 건물주와 눈감은 공무원을 엄중히 처벌했다면,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피해 지역에 급파했다면, 상대 당 출신의 시장이 배출된 지역이라고 하타이 시를 소외시키지 않았다면, 세계에 구호의 손길을 일찍 내밀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든 다할게요.” 동생을 지키려고 구조를 애원하는 튀르키예 소녀의 이 말은 십년 후 백년 후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을 하게 만든 말로 기억돼야 한다. 그래야 오마이라도 쿠르디도 눈을 감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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