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4-04-27 21:20 (토)
[이의경의 시콜세상]가짜 노동의 결과, 최장 노동시간과 최저 생산성
상태바
[이의경의 시콜세상]가짜 노동의 결과, 최장 노동시간과 최저 생산성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3.26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ㆍ이의경 대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공인회계사

겉으론 장시간 노동 속으론 노동생산성 최저, 근무시간 17% 사적 활동
모두들 바쁘기만 할 뿐,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국회 앞에서 연 '주 4일제 네트워크 출범 공동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한국노총은 노동시간 단축 및 일과 삶의 균형 등을 위한 주 4일제 도입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국회 앞에서 연 '주 4일제 네트워크 출범 공동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한국노총은 노동시간 단축 및 일과 삶의 균형 등을 위한 주 4일제 도입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번 정부가 노동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하면서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평균 노동시간인 1716시간보다 200시간 정도 많다. 랭킹은 멕시코(2128시간), 코스타리카(273시간), 칠레(1916시간)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노동생산성은 어떠한가.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주요국 중 최하위 바닥권으로 나타났다. 노동생산성은 부가가치를 노동시간으로 나누어 측정하는데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9.4달러로 OECD 37개국 중 33위에 그쳤다. OECD 평균인 64.7달러의 4분의 3수준이다. 특히 1위인 아일랜드 155.5달러에 비교하면 3분의 1도 되지 않고 독일(88.0달러), 미국(87.6달러)은 물론 튀르키에, 헝가리보다도 낮다. 우리보다 낮은 노동생산성을 기록한 국가는 그리스,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뿐이다.

이의경 대진대 교수/공인회계사
이의경 대진대 교수/공인회계사

노동시간은 거의 세계 최장 수준인데 노동생산성은 거의 최저 수준이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노동시간은 투입이고 노동생산성은 산출이니 투입대비산출을 나타내는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비효율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데 자기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의 근로시간은 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생산활동에 기여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올해 3월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주요 기업 근로자 업무몰입도 현황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매출 100대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근로자들이 근무시간의 17% 정도를 사적 활동에 쓰고 있다고 답했다. 하루 근무시간 8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1시간 20분 가량을 업무와 무관한 사적 활동에 쓴다는 것이다. 사적 활동, 즉 딴짓이란 흡연이나 인터넷 서핑, 사적 외출 등이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책, ‘가짜 노동’(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저)에서는 실질적인 가치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바쁜 것처럼 일하는 가짜 노동을 다루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 접속시간을 분석한 결과 평일 근무시간에 가장 많이 접속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니 경총의 조사결과와 일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짜 노동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하는 (저자들이 살고 있는) 덴마크 얘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한국에서 더 큰 공감을 받을 만하다. 덴마크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짧지만 노동생산성은 5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덴마크 보다 500시간 이상 더 오래 일하면서도 노동생산성은 절반 수준 정도이기 때문이다.

가짜 노동은 개인적 차원보다 사회적 차원에서 더 심각하다. 대학들은 허구한 날 구조조정을 한다고 구성원들을 몰아치지만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을 바꿔가며 사업을 만들어 대학을 평가하면서 예산을 퍼붓고 있지만 학령인구의 감소로 다가오는 시한폭탄 앞에서 무기력해 보인다. 의료계에서 의사들은 환자에게 불필요한 과잉검사와 과잉진료로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통행세 받듯 처방전을 발급하고 제약사의 경비부담으로 외유성 해외세미나에 참가하느라고 바쁘다. 법조계에서는 공감할 수 없는 판결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번 선거처럼 대놓고 공직 범법자들이 나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전과자가 등록후보의 30%를 넘고 심지어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은 후보들이 나와서 준법시민들을 훈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판사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고 하니 그 원인도 가짜 노동 때문이 아닐까. 모두들 바쁘기만 할 뿐,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가짜 노동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