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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경의 시콜세상]연두색 번호판으로 업무용 법인 슈퍼카를 막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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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경의 시콜세상]연두색 번호판으로 업무용 법인 슈퍼카를 막을 수 있나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4.0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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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의경 대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공인회계사

포르쉐 77%, 벤틀리의 85%, 롤스로이스는 98%가 법인 차량
고가차량 세금혜택 없애면 간단한데 수입업체 로비 때문인지
고가 법인승용차에 '연두색 번호판' 부착하는 모습. 사진은 칼럼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연합뉴스
고가 법인승용차에 '연두색 번호판' 부착하는 모습. 사진은 칼럼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연합뉴스

서울 강남의 도로 한복판에서 굉음과 곡예운전으로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억대의 슈퍼카들은 직장인들의 불만을 고조시켜 온 면이 있다. 근로소득자인 직장인들은 비용인정을 받을 수 없지만 이들 차량은 약 90%가 법인 명의로 등록되어 차량유지비를 비용처리해서 세금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에는 한 제과 그룹 회장이 수십억원의 슈퍼카를 개인용도로 타고 억대 스포츠카를 자녀 통학용으로 사용하다가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난 해 마약에 취해 길 가던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한 압구정 롤스로이스남이 운전했던 차량도 법인차량이기 쉽다. 포르쉐의 77%, 벤틀리의 85%, 롤스로이스는 98%가 법인 차량이라는 조사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슈퍼카에 대한 이미지는 곱지 않지만 고급 수입차를 무늬만 업무용으로 운행하면서 세금을 피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경제적 유인을 좇는 사람들보다 법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본다. 또 이렇게 법인 차량으로 등록해서 세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사실은 당사자들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주변의 세무전문가들이 조언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2015년에 이러한 문제가 큰 이슈가 되어 법을 개정한 바 있다. 당시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슈퍼카 방지법’이라고 요란하게 홍보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초라했다. 해당 자동차의 운행일지를 작성해야 경비처리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운행일지를 작성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슈퍼카를 타는 회장님, 사장님이 작성할 리도 만무하다. 실효성도 없이 직원들만 힘들게 만드는 규제법이었다.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운행일지를 작성하게 해도 효과가 없자 이번에는 올해부터 8000만원이 넘는 법인차량에 연두색 번호판을 부착하게 했다. 주홍글씨 효과로 법인차량의 개인적 사용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옹호하는 측에서는 올해 슈퍼카 판매가 줄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올해가 한 달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성급한 판단이다. 그리고 연두색 번호판 시행을 앞두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 지난해 말에 미리 많이 샀기 때문에 나타나는 기저효과일 것이다. 또 8000만원 넘는 수입차를 8000만원에 맞추기 위한 꼼수도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취지와는 별개로 연두색 번호판은 국민들 간의 갈등을 이용하는 방법 같아서 마뜩잖다. 주말여행이나 등하교 현장에 나타나는 연두색 번호판 차량을 다 같이 째려보면 이를 의식해서 법인차량의 사용이 억제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어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국민들에게 떠넘긴 것 같은 느낌이다. 비싼 차를 싸게 탈 수 있게 해놓고 타지 말라는 것도 억지스럽지만 그간의 행태를 보면 슈퍼카들은 별로 남의 시선을 의식할 것 같지도 않다. 혹시 세금혜택을 누리면서 예상치 못한 과시효과까지 나타날까 우려된다.

업무용 슈퍼카를 막기 위한 방법이 이렇게 궁색한 것들밖에 없을까 안타깝다. 발상을 전환해서 고가차량은 아예 법인차량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해결될 것이다. 즉, 처음부터 8000만원 이하의 차량만을 법인차량으로 인정해주면 된다. 사실 억대 슈퍼카를 업무용으로 쓴다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고가차량의 세금혜택을 이렇게 없애면 조세형평도 달성하고 고급차 수입업체의 로비 때문이라는 세간의 의심도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일정한 금액 이하의 차량에 대해서만 비용처리해주는 국가들이 있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업무용 차량금액을 3000만원, 호주는 5000만원 수준으로 정해서 이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비용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운행일지나 연두색 번호판 모두 핵심을 짚어 정공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앞에 두고 주변만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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