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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경의 시콜세상]'크기 콤플렉스'에 빠진 지자체장들의 '크기'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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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경의 시콜세상]'크기 콤플렉스'에 빠진 지자체장들의 '크기' 경쟁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0.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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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의경 대진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공인회계사

울산시, 미국 '큰바위 얼굴' 흉내내기 조각상 계획 비난일자
이번엔 울주군 천주교 성지에 세계 최대 성경책 전시 '경악'
미국 사우스다코다주 러시모어산 바위에 새겨진 워싱턴, 제퍼슨, 링컨, 루즈벨트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 조각상 ⓒiStock

미국 사우스다코다주(州)에 있는 러시모어산(山)에는 워싱턴, 제퍼슨, 링컨, 루즈벨트 등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큰바위얼굴’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앞서 발표된 나다니엘 호손의 동명 소설 ‘큰바위얼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월에 울산시는 울산 국도변 야산에 국내 대표기업의 창업자들을 조각상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SK그룹 최종현 회장,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거론되었는데 높이 40m 흉상에 받침대 높이까지 더하면 50m가 되는 거대한 흉상이다. 러시모어 큰바위얼굴의 크기가 60m 정도인데 직접 이를 보았을 때 압도되던 느낌을 생각하면 울산시가 계획한 조각상도 이에 밀리지 않을 것 같다.

울산시는 1인당 개인소득 순위로 서울시와 함께 전국 1, 2위를 다투고 있다. 울산시가 공업도시로 발전해서 이만한 위치에 이르게 된 데에는 물론 이 지역에 공장을 세운 기업인들의 덕이 가장 크다. 이들에 대한 고마움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대 조각상은 지나친 감이 있다. 더구나 이를 제작하는데 250억원이나 쓴다고 한다. 경기침체로 올해 세수부족이 역대 최대인 59조원이라고 한다. 이에 중앙정부는 국민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경없이 외평기금 등까지 총동원하는 비상 상황이므로 울산시의 이러한 사업에는 더 공감하기 어렵다.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이의경 대진대학교 교수/공인회계사

무엇보다도 큰바위얼굴사업을 현대그룹, SK그룹, 롯데그룹, 삼성그룹에서 좋아할까. 정치인 울산시장이 자신의 전시성 업적을 만드는 사업에 합리적인 경제인들이 기뻐할지 의문이다. 사회적 비난 때문인지 결국 울산시가 계획을 철회했는데, 그 이면에는 해당 기업의 반대도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9월에 보도된 소식에 다시 말문이 막힌다. 큰바위얼굴을 포기한 울산시가 이번에는 세계최대 크기의 성경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울주군 언양읍 살티공소는 천주교의 성지라고 하는데 이곳에 전시관을 건립하고 성경책 전시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기서 큰바위얼굴과 세계최대 성경책 사이에는 어떤 대체성이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해서든지 250억원을 쓰겠다는 울산시의 의지는 읽을 수 있다. 성경책 제작만으로는 그 돈을 다 못쓰기 때문에 전시관까지 짓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전시관을 짓고 나면 관리비용이 계속 지출될 텐데 그 비용은 미래세대가 떠안아야 한다. 그런데 울산시에는 천주교 신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왜 울산시민들이 낸 세금(지방세)과 타 지역의 국민들이 낸 세금(중앙정부의 교부금)을 특정 종교의 사업에 사용하는 것인가. 아마 천주교에서도 이런 방식의 사업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울산시는 이번 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기네스북 등재를 염두에 둔다고 했다. 그런데 울산시는 이미 2011년에 울주군 온양읍에 있는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세계 최대의 옹기를 만들었다. 이 옹기는 무려 5번의 실패를 거친 후에 6번째 성공한 5전6기의 산물이다. 당시에 기네스에서는 심사기준이 없어서 인증타이틀을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온양읍에서 45분 거리에 있는 언양읍에 또 세계최대의 성경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크기콤플렉스가 있는 것인가.

크기콤플렉스는 울산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자체장들의 크기 경쟁으로 세금이 낭비된 사례가 지천이기 때문이다. 충남 공주시의 세계 최장의 인절미, 대구 수성구의 세계 최장의 김밥은 그래도 참가자들끼리 나눠먹고 치우는 것이니 봐줄 만하다. 충북 괴산군의 초대형 가마솥부터 충북 영동군의 세계 최대의 북, 강원 양구군의 세계 최대의 해시계, 광주 광산구의 세계 최대의 우체통, 전북 무주군의 초대형 태권로봇... 이런 사업에 수억에서 수백억원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야 하는가. 이런 것들은 제작 후에도 계속 관리를 해야 하므로 끝없이 세금을 먹는 하마들이다. 세수부족을 걱정하기보다 지자체장들의 세금사용에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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