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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아프간 여자배구 선수들은 이미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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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아프간 여자배구 선수들은 이미 승리했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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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경기에선 졌지만 억압을 뚫고 참가한 숭고한 의지
자유에의 갈망을 공감하지 않으면서 '사람이 먼저'?
지난달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스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히잡을 쓴 아프가니스탄 여자배구 선수단이 손을 흔들며 입장하고 있다. 탈레반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17명의 여자 선수들은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별도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배구선수들도 국외  망명 선수들 중 하나다. ⓒ연합뉴스

감동이었다. 자유를 위한 인간 의지가 세계를 향해 포효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처럼 극적인 드라마는 일찍이 없었다. 인간의 서사 중 이만큼 눈시울을 붉히는 이야기는 없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의 어떤 대목도 이렇게 극적인 감동을 주는 장면은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 배구팀 이야기다.

지난 1일 중국 항저우 아시안 게임 여자배구 경기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자 배구팀은 2세트에서 일본 팀에게 25대 0이라는 믿을 수 없는 스코어로 패배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유의 전사들이었다. 히잡을 쓴 채 온몸을 코트에 던지는 선수들을 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안타까움을 대신하고 싶은 사람이 대다수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들과 아픈 가슴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간절함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잊고 있었던 기억이 다시금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때의 그 처참한 현장. 그때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그리 야속했던지, 마치 내 자신이 미국에게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언제까지나 함께 할 우방으로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배신하고 떠날 때 베트남의 보트 피플이 떠오른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정말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미국이 자기네 젊은이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세계를 위해 언제나 정의의 사자로 행동해 주길 바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자유 베트남이 공산주의에 멸망한 건 스스로 자유를 지킬 의지가 없을 때 세계 최강의 미국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 주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 역시 스스로 지키려는 의지가 없을 때 어떤 일을 겪는지 몸서리치며 실감했다. 공항으로 밀려드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필사적으로 비행기에 오르려고 몸부림치는 장면은 오히려 보는 사람이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의 공통점은 자유를 지킬 의지도 없었다는 점 말고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썪었다는 사실이다. 그럴 땐 아무리 세계 최강국이라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럴 때 국민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원죄는 국민에게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부패한 건 국민이 심판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확증편향으로 일관할 때 비극은 싹트는 법이다.

탈레반! 그 지옥의 이름 앞에서 모든 사람의 숨은 멈춰 섰다. 질식할 것 같은 공포 분위기는 자막도 음성도 없는 화면만 보고도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다. 어쩌면 이역만리 타국 사람들의 정서가 그처럼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을까. 그들이 느꼈을 공포가 전이되어 아직도 생생한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여전사들을 대하며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탈레반이 득세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대중이 그들에 동조해서이지 않았을까. 여자배구 선수들은 그 지옥을 탈출한 사람들이지만, 그렇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아 대중이 탈레반을 지지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정작 실제 현실에서 아무 도움도 되어주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깨달을 때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접동/접동/아우래비 접동/진두강(津頭江)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진두강 앞마을에/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먼 뒤쪽의/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누나라고 불러 보랴/오오 불설워/시세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김소월의 ‘접동새’라는 시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보면서 갑자기 왜 이 시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다. 옛날 진두강 가에 십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맏이인 누이가 계모에게 학대를 받다가 죽어 접동새가 되어 밤이면 아홉 남동생들(아우래비)이 그립고 걱정되어 이산 저산을 돌며 슬피 울었다는 설화를 담고 있다.

‘접동새’는 특정한 누구의 이야기이기보다는 가난과 억압 속에 신음하던 모든 사람들의 한(恨)을 노래한 것이었겠지만 그건 바로 내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였는지 “접동, 접동” 하는 첫 소절부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공항으로 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왜 김소월의 시가 떠올랐는지 내 스스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시사 칼럼에서 이처럼 감성적인 언어를 토해내는 것이 자연스럽지도 않거니와 독자들께 생소할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이처럼 감성적인 언어를 쏟아내는 까닭은 독자들에게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고자 하는 심정에서다.

아프가니스탄 여자 배구팀 선수들의 몸짓에서 자유에의 의지를 읽었는가. 그걸 읽지 못했다면 김소월의 ‘접동새’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보기 바란다. 한(恨)이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라고 배웠겠지만, 자유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 한이 된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면 정말로 한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이성적인 개인보다는 감성적 선동에 의한 집단이 중시되어 왔다. 개인의 자유가 배척당하면 공동체의 유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이성적인 사고는 집단의 감성에 의해 적대시되어 왔던 게 그간의 사정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수많은 ‘접동새’를 만들어냈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치는 서민을 곤경에 빠드렸고, 그런 아이러니가 반복되었지만 대중은 그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배구선수들의 자유를 향한 의지, 그 안간힘을 이성적으로는 물론 감성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사람’을 말할 자격이 없다. ‘사람이 먼저’라는 달콤한 언어는 프로퍼갠더(선전·일정한 의도를 갖고 여론을 조작해 사람들의 판단이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해 가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탈레반과 똑같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 여자배구 선수들을 보며 때로 이성보다 감성이 소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제발 그들과 아픔을 함께하길!

 

*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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