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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일방적 무장해제 9ㆍ19를 찬양하는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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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일방적 무장해제 9ㆍ19를 찬양하는 문재인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9.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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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수도권 방위 치명적 타격" 합참 반대에도 북에 굴종한 합의
상대는 언제고 되돌릴 수 있는데 나만 구속 받는게 합리적?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들어 9‧19 군사합의 폐기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 19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문 정부 사람들이 서울 여의도 63빌딩 그랜드볼룸에서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문 전 대통령도 말했듯 평양공동선언의 핵심은 군사합의다. 그런데 9‧19 군사합의는 문재인 정부 당시 이미 실질적으로 폐기 상태나 다름없었다. 북한이 합의를 밥 먹듯이 어겼기 때문이다. 그런 걸 기념한다는 건 자신들의 가장 큰 업적(?)이 훼손된 걸 회복하고자 하는 것에 더해 윤 정부의 폐기, 내지는 효력 정지 움직임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문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의 7‧4 공동성명에서 시작해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10‧4 공동선언, 문재인 정부의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까지 역대 정부는 긴 공백 기간을 뛰어넘으며 이어달리기를 해왔다”며 “이어달리기가 될 때마다 남북관계는 발전하고 평화가 진전됐다”고 했다. 어처구니없다. 이어달리기라니. 이건 현실을 잘못 진단해도 한참 잘못 진단한 것이다.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순리대로 진전해온 게 아니었다. 한 단계씩 차곡차곡 쌓아온 게 아니라 언제나 원위치였다. 그걸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게 바로 김여정이 남북관계 파탄 선언과 함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무참히 폭파시킨 것이다.

7‧4 남북공동성명은 선언적 의미에 그쳤고, 남북기본합의서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휴지 조각이 됐다. 또 6‧15 공동선언은 그 성과물이라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 중단 및 개성공단 폐쇄로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10‧4 공동선언은 사실상 알맹이 없는 맹탕이었다. 문 정부 때의 두 가지 선언은 앞서 지적했듯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함께 ‘삶은 소 대가리’라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없던 일이 됐다. 이렇듯 남북관계는 늘 ‘도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어달리기라니 턱없는 얘기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9‧19 군사합의는 사실상 우리 측의 일방적인 무장 해제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합의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에 관한 뒷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은 비행금지구역을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설정하려 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북한의 의도는 우리의 공중감시 능력을 약화하려는 것이었다고 짐작된다. 공중감시 능력은 남북 간 역량 차이가 커 비행금지구역을 넓히는 만큼 우리의 정보 수집 능력은 떨어지게 되니 똑같은 거리로 제한하더라도 우리 측이 일방적으로 손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간 밀고 당기기가 이루어졌지만 우리 측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말았다. 합참은 당시 “수도권 방어 임무에 치명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강력 반대했지만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군 내부에서는 ‘손발을 묶어두고 수도방위를 하자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정권 차원에서 진행되는 일인 만큼 별다른 힘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국가 안보 문제를 이렇듯 남북화해의 쇼로 희생시켰다는 사실은 문 정부가 보여주기식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안보마저 가볍게 여겼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문 전 대통령은 이어달리기의 성과로서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평화가 진전된 사례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의 남북단일팀,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방한, 개성공단 가동, 우리 국민 200만이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는 점을 들었다. 지금 그런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런 일이 있었음이 오히려 허망함을 안겨줄 뿐인데도 어떻게 그런 ‘성과’를 천연덕스럽게 입에 올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성과들이 살아있는 것으로서 앞으로 남북관계 발전의 토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말인가. 어쩌면 이렇듯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사는지 모르겠다.

의미심장한 것은 그가 “평양공동선언은 훗날 냉전적 이념보다 평화를 중시하는 정부가 이어달리기를 할 때 더 진전된 남북합의로 꽃피우게 될 것”이라며 “이어달리기 공백기간이 짧을수록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는 낮아질 것이고, 남북은 그만큼 평화에 다가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는 윤 정부의 현실적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시급히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남북합의에 의한 평화에 다가갈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잊혀지고 싶다던 말과 다르게 사사건건 현안에 대해 시비를 걸더니 이제 아예 내년 총선에 개입하고자 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는 또 “지나치게 진영외교에 치우쳐 외교의 균형을 잃게 되면 안보와 경재에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며 “동맹을 최대한 중시하면서도 균형 있는 외교를 펼쳐나가는 섬세한 외교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중‧러의 밀착, 특히 최근 북‧러의 세상이 다 알 만한 ‘비밀협약’이 캠프데이비드 3국 회담 등 윤 정부의 동맹외교 강화 탓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균형 외교라는 건 따지고 보면 줄타기 외교라 할 수 있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지 문 정부 스스로 잘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른바 ‘운전자론’을 들고 나와 이도 저도 아닌 ‘눈치 외교’로 일관한 결과 양측 모두에서 홀대받으며 ‘신뢰할 수 없는 상대’로 낙인찍힌 게 문 정부 외교다.

문 정부 외교는 한마디로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그저 상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며 굽실대는 식이었다. 그러면 상대가 그 진심을 알아주어 감동할 것라고 믿었는지 모르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외교관계라는 게 그렇듯 낭만적이지 않다. 저자세를 취할수록 상대는 더 강경해지고 도도해진다. 당장 중국이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문 정부 때 중국이 한국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며 푸대접했는가. 하지만 윤 정부 들어 원칙을 강조하며 당당하게 나가자 오히려 중국이 한국 관광을 풀며 접근해 오고 있지 않는가.

문 전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파탄을 맞고 있는 지금 남북군사합의는 최후의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언젠가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면 남북 간에도 군사합의를 더욱 발전시켜 재래식 군비까지 축소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했다. 군사합의가 최후의 안전핀이라는 주장에 문 정부 사람들 외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까. 마치 뭔가 이루어질 듯하다가도 이내 원위치 되기를 반복해 왔던 남북관계의 역사를 보면서도 북한이 합의를 지킬 거라고 믿는가.

선의에만 기대는 합의는 합의라고 할 수 없다. 상대는 언제고 되돌릴 수 있는데 반해 나는 구속을 받는다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언제 상대가 태도를 돌변할지 알 수 없어 전전긍긍한다면 그런 합의를 할 이유가 있을까. 북한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그런 상대와 합의나 선언은 이미 확인되었듯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대결적 자세를 취하자는 게 아니다. 작은 것이라도 실천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대북정책은 속도보다 정확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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