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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김남국이 만들고 이재명이 집착하는 ‘현수막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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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좌충우돌]김남국이 만들고 이재명이 집착하는 ‘현수막 지옥’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7.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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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종근 시사평론가

2022년 민주당 발의 옥외광고물법 개정안 ‘불철거특권’
정치혐오 유발, 예산 낭비, 환경 파괴, 안전사고 책임은?
도심에 난립한 정당 현수막 ⓒ연합뉴스
도심에 난립한 정당 현수막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모든 전국 단위 선거에서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 연전연패하던 시절 좌파진영의 교수들과 정치평론가, 당의 책사들은 패배의 원인을 두고 다각도로 곱씹으며 분석에 몰두했다. 2015년 민주당의 전신 새정치민주연합에 영입된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그런 반성·성찰의 일환으로 트위터에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의 현수막을 비교한 글을 올렸다. 현수막에서부터 새누리당에 지고 들어간다는 취지로 양당의 현수막을 거론한 그는 “새누리당은 실행하는데 새정치는 생각만 한다”면서 "새누리당은 동네사람들한테 딱 맞는 내용을 걸었고 우린 대충 아무데나 걸어도 되는 걸 걸었다"라며 "디자인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더 한심했던 것은 돈 아끼려고 (상대당보다) 작은 걸로 했다고 한다. 그것도 전국 모두에“라고 질타했다.

민주당이 현수막에 집착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 이후 중앙당은 각 시도당에, 시도당은 다시 각 지역위에 현수막 게시에 대한 세부 지침을 내려 보냈고 부산·경남같은 전략 지역엔 예산을 집중 배정해 물량 공세를 이어갔으며 주민들의 시선을 잘 끌 수 있는 ‘목’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이를 분기점으로 선전 선동 도구로서의 현수막 정치를 앞서 가기 시작했다고 판단한 민주당은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과 관련한 광고물을 선거기간에 국한하지 않고 수량이나 규격, 게시 장소 제한 없이 내걸 수 있도록 하는 법안 개정을 추진했다. 그에 따라 김남국 서영교 등이 대표 발의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2022년 통과됨으로써 무한 경쟁의 ‘현수막 지옥’이 국민들 앞에 펼쳐졌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일부를 제외하고 대다수 찬성한 법안이긴 하지만 민주당이 주도한 개정안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현수막 게시를 규제해왔던 모든 요소들을 자신들이 스스로 제거하는 ‘제 머리 깎기’ 신공을 보여줬다. 민주당은 기존 지자체가 옥외광고물법을 근거로 정당 현수막을 단속해 철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당 활동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하겠다며 정당 현수막을 옥외광고물법 규제 범위에서 제외시켰다. 시민단체나 문화공연 단체들이 온갖 서류를 들고 들어가 허가를 받아야 간신히 내거는 것과 달리 정당의 현수막은 허가를 받거나 신고를 할 필요도 없이 게시할 수 있고, 금지·제한 요소를 적용받지 않게 된 것이다. 불체포특권처럼 불철거특권을 부여한 셈이다. 당시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차관이 “지금 정당이 44개인데 한 당이 하나씩만 걸어도...”라면서 제기한 문제를 의원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이종근 시사평론가
이종근 시사평론가

민주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책-아젠다-비전의 정치가 아니라 네거티브-프레임 정쟁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생태탕으로 말아 드시더니 대선은 주술사로 날려 보냈고 급기야 지선까지 집무실-관저 이전 등을 물고 늘어져 치욕의 3연패를 기록했다. 그래 놓고도 민주당은 여전히 후쿠시마, 양평고속도로 등으로 이어지는 프레임 전쟁을 담아낼 도구로 현수막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SNS나 유튜브는 정치효능감을 극대화하려는 정치 고관여층 지지자들의 로열티를 견고하게 할뿐 확장성이 없는 반면 도로에 내걸린 현수막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무당층 부동층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상대하는 집권여당은 19대 대선, 7회 지선, 21대 총선에서 힘없이 무너진 국민의힘이 아니다. 당시처럼 전략과 전술도 없이 전투와 전쟁에서 모두 판판이 깨지는 맥없는 정당이 아니다. 터무니없는 공격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댓거리할만큼 연전연패의 상흔에서 벗어났다. 민주당의 현수막 비방전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가 담긴 맞대응의 현수막이 넘쳐난다. 문제는 그로 말미암은 수많은 부작용이다.

개정안 시행후, 법 시행 전 3개월 동안 6415건이었던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이 법 시행 후 3개월 사이 1만 4197건으로 2배 이상 대폭 증가했다. 정당 현수막 관련 안전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개정 이후 3개월간 정당 현수막 관련 안전사고 8건이 보고되었다. 사고 사례로는 현수막에 걸려 넘어짐, 운전자 시야 방해 그리고 현수막이 걸린 가로등 전도(顚倒)에 기인한 차량 충돌 등이 있었다. 정당 현수막의 난립에 따른 보행자와 차량 통행의 안전 위협, 도시미관 저해, 일반시민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극한호우처럼 쏟아지는 폐현수막의 환경공해는 더 심각하다. 재사용이 어려운 현수막은 대부분 불에 태워지거나 땅에 묻힌다. 화학섬유원단인 현수막을 태우면 다이옥신, 미세플라스틱 등 1급 발암물질이 이산화탄소와 함께 공기 중에 퍼진다. 땅에 묻어도 썩지 않고 유해한 물질과 함께 영원히 남는다. 재활용도 한계를 초과해서 쏟아내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한다. 21대 총선 당시 현수막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30년산 소나무 2만1100그루 흡수량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환경을 입에 달고 사는 ‘입 진보(행동은 정반대로 하고 입으로만 떠드는 진보)’ 정당들이 ‘온 세상 현수막 지옥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현수막 정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를 보면 이전 지도부 체제에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을 넘는 등 주기가 일정하지 않았던데 비해 이 대표 취임일인 2022년 8월28일 이후부터 일주일마다 새 현수막 홍보자료물이 올라온다. 네거티브에 올인하려고 더 자극적으로 더 선정적으로 문구를 내놓다보니 민주당 중앙당이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이완용의 부활’에 비유한 현수막을 내려보내자 민주당 수도권 의원들이 “너무 살벌하고 자극적”이라며 게시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제 현수막 정치는 영화 ‘친구’ 대사처럼 ‘많이 먹었다, 그만 하자’. 민주당은 개정안 통과 후 비판이 이어지자 3개월만에 재개정한다고 나섰지만 말뿐이고 그마저 미적거리고 있다. 어느 정당이든 국민으로 하여금 일상의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 현수막 정치를 자제한다고 먼저 나서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온 거리를 현수막으로 도배하지 않는다. 2022년 기준 스마트폰 보급률이 93.4%로 세계 1위인 국가에서 정책 홍보 수단이 꼭 현수막이어야 하나. 사거리마다 LED 전자게시판을 설치해 각 정당의 구호를 차례대로 흘려 내보내는 방법도 있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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