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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미의 재계포커스]전경련 부활 절실하지만 한경연 꼭 없애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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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미의 재계포커스]전경련 부활 절실하지만 한경연 꼭 없애야했나
  • 이강미 기자
  • 승인 2023.08.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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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해리티지' 민간 싱크탱크 42년 쌓은 업적 역사속으로
한경협은 정치권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연구토록 독립성 보장을
서울 여의도동 전경련빌딩 전경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동 전경련빌딩 전경 ⓒ연합뉴스

[매일산업뉴스]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KERI)이 42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오는 9월 새출범하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한경연을 흡수통합해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지난 40여년간 이어온 순수 민간경제연구원인 한경연 조직을 사실상 폐지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전경련은 22일 임시총회를 열고 산하 연구기관인 한경연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흡수·통합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이는 올해 2월 김병준 전 전경련 회장직무대행이 취임한 이후 지난 5월 발표한 전경련 쇄신안에 포함된 내용으로, 한경협의 연구기능을 강화해 경제계를 대표하는 글로벌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김 전 회장직무대행에 이어 이날 전경련 39대 회장직에 취임한 류진 풍산그룹 회장도 ‘조직을 키우지 않으면서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류 회장은 이날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저희 규모가 축소되어서 인원이 많지 않다”며 “다른 연구기관과 경쟁하기보다는 경제연구원이 있는 다른 기업들과 협업해 아웃소싱을 하거나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등에서 나오는 필요한 좋은 자료를 활용해 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원을 많이 고용하기보다는 양보다 질을 중시하면서 이끌어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한경연은 당초 박사급 연구인력이 25명 안팎이었으나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구조조정 여파로 현재 6명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이를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전경련의 싱크탱크 역할 강화와는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정책을 제시해야는 만큼 전문인력 확충이 시급한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경련은 인력확충은 고사하고 연구조직을 통·폐합함으로써 한경연 폐지에 나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번 그래왔듯이 전경련 위기극복을 위한 명분쌓기용으로 '싱크탱크 역할 강화'를 내세운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이번에도 역시 선언적인 차원에서 그칠 공산이 클 것이란 견해가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싱크탱크 역할이라고 하면 어떤 정책 발표 이전에 정보를 입수해 정세를 분석하고,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전경련이 쇄신안을 실천해야 하는 현재 상황에서 당장 인력확충은 어렵기 때문에 아웃소싱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웃소싱을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최소한의 인력확충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정책제안시 얼마나 깊이있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며 “싱크탱크 역할을 강화하고, 보다 깊이있는 연구와 정책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박사급 전문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부 연구자료들이 우리 경제현안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아웃소싱을 하더라도 내부기능이 강화돼야 외부 네트워크도 강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경연 폐지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는 이들도 많다. 한경연이 순수 민간경제연구기관으로써 지난 42년간 이어온 연구활동과 정책제안 등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는 점 때문이다. 더욱이 한번 폐지된 조직을 재정비해 복원시키는 것은 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에서 전경련 부활을 위해 한경연을 꼭 폐지했어야만 했느냐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경연은 한국의 해리티지재단으로 불릴 정도로 지난 42년간 순수한 민간 경제정책연구원으로서 쌓아온 업적과 브랜드가치가 있다”며 “그런 한경연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경연은 1963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족시킨 경제기술조사센터(정식명칭은 한국경제인연합회 부설 경제 기술조사 센터)가 모태가 됐다. 1981년 4월 1일 한국경제연구원으로 정식 설립됐다. 이후 한경연은 한국경제와 산업동향에 대한 정보수집 및 분석 등을 통해 기업의 장·단기 발전과제를 연구하면서 매년 40여편의 연구자료를 냈다. 특히 국제경제, 거시경제, 금융, 조세, 재정 분야 등 다양한 경제 이슈를 통해 매 분기마다 ‘KERI 경제전망과 정책과제’와 각종 ‘규제연구’ 등을 발표했다.

한경연이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냈던 시기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선친인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한경연 원장(1987~1992년)에 이어 전경련 회장직(1993~1998년)을 역임했던 때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김영삼정부에서 정책과제로 추진했던 ‘신경제 5개년 계획’이 성공하기 위한 경제정책 제언은 물론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는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최종현 회장은 재벌 소유 분산 정책 등 규제에 대해 비판하다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 

재계 일각에선 전경련이 진정한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연구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한경연 폐지 대신 독립성 보장과 함께 연구기능을 강화시켰어야 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는 정경유착을 단절하는 한 방편으로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민간기업에 속한 경제연구소들이 경제연구활동과 경제정책을 대외적으로 내놓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며 “전경련이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연구조직 통·폐합보다는 정부나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해 줬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내달 중순경이면 산업통상자원부의 인가를 거쳐 한경연은 한경협에 통·폐합된다. 전경련이 싱크탱크 역할 강화를 위해 연구기관 통·폐합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만큼 향후 한경협의 행보와 역할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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