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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국민의힘이나 대통령실이나 그릇 크기는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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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의 종횡무진]국민의힘이나 대통령실이나 그릇 크기는 똑같다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2.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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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조남현 시사평론가

전통 보수 정당 안보이고 ‘윤심’ 경쟁만 ... 지지자는 물론 국민 실망
감동없는 전당대회로는 누가 당 대표가 되든 총선 승리 장담 못해
7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 방송 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후보자 비전 발표회에서 김기현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7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 방송 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후보자 비전 발표회에서 김기현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본래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야기다. 당 대표에 도전하고 있는 후보들이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오직 ‘윤심(尹心)’ 쟁탈전만이 있을 뿐 그 누구도 비전을 제시한 바가 없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힘은 무개념‧무뇌아 집단의 ‘봉숭아 학당’으로 비칠 뿐이다. 한심하다. 그 존재의 가벼움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정권 획득이다. 따라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정책과 비전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건 바로 철학과 이념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그런 게 없다. 그 전신이었던 한나라당, 새누리당, 미래통합당 모두 마찬가지였다.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번도 노선투쟁이 벌어진 적이 없다. 어떤 가치를 기치로 걸고 당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임으로써, 곧 국민에게 당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고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나 그 전신이었던 당이 그래본 적이 있었나. 철학의 부재는 과거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그래서야 국민의 지지를 받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나 싶다. 

조남현 시사평론가
조남현 시사평론가

모름지기 정당의 전당대회는 가치의 경연장이어야 한다. 치열한 가치논쟁은 그 자체로 전당대회 흥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새로운 가치, 혹은 새로운 노선을 제시함으로써 이목을 집중시킨다면 그게 흥행 아닌가.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윤심’을 놓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이 언론의 외피를 쓴 황색 저널리즘의 먹잇감이 되거나 술자리 안주가 되고 있을 뿐이다.    

가치논쟁은 정체에 빠져 있는 당을 쇄신하여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고자 할 때 벌어지는 것이고, 그 결과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제시했던 ‘제3의 길’이 있다. ‘제3의 길’은 블레어가 앤서니 기든스가 제시한 모델을 현실정치에 받아들인 것으로, 치열한 고민과 사유의 산물이다. 사회주의가 사실상 종말을 고한 뒤 좌파가 노선변경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와의 타협을 모색한 결과다. ‘제3의 길’이 좌파의 새로운 길 찾기라면 미국 공화당의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는 우파의 새로운 모색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흔히 ‘네오콘’으로 줄여 부르는 이 흐름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위대한 미국’ 건설과 그 가치의 세계적 확장을 추구한 이데올로기다. 

이처럼 어떤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적 모색을 고민하는 움직임이나 흐름은 이제까지 한국의 우파 정당에서 나타난 적이 없다. 좌파 정당이나 정치세력이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온 데 반해 우파 정당은 제대로 된 정체성조차 갖추지 못해 왔다. 물론 한국의 좌파 정당이나 정치세력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했음에도 오히려 퇴행적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몰아서 문제였지만.

지금 국민의힘을 보면 이런 지적이나 논의가 부질없어 보이긴 하지만 하도 답답해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민의힘 대표, 또는 최고위원 주자들은 저마다의 깃발(가치)을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거기에 공감하여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원내외 인사들이나 당원을 결집하며 세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 현재의 이념적 좌표에서 더 이상 무슨 가치논쟁이 필요하겠느냐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국민의힘이 우파 정당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천편일률적이지 않다면 가치논쟁, 곧 노선투쟁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보수주의의 강화, 중도로의 노선 확장, 혹은 자유주의로의 정체성 확립 등을 기치로 논쟁을 벌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정책과 노선이 정체성과 부합했는지를 돌아보고 기존의 정체성을 강화하든,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지 못한다면 정치를 할 이유도 없고, 따라서 정치권에 남아 있을 이유도 없다. 

국민의힘이 여당으로서는 물론 정당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보여주지 못한 채 ‘윤심’ 경쟁만으로 지지자는 물론 국민을 실망시키는 것 못지않게 윤석열 대통령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가 지도자로서의 큰 그릇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서다. 윤 대통령은 애당초 ‘윤심’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했다. 그러나 어물쩍 넘기며 당을 쥐락펴락하고자 하는 속마음을 감추고자 했다. 그런데 그게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윤 대통령이 최근 안철수 의원에게 보이는 태도도 그 연장선에서 해석할 때 이해가 된다.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안 의원의) ‘윤‧안 연대’ 주장은 대통령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정말 잘못된 표현”이라며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란 표현도 대통령 참모를 간신배로 몰고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나 대통령실 인사들이 “안 의원이 ‘윤심’은 아니다”며 “‘윤핵관’ 표현으로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 등은 윤 대통령의 그릇의 크기를 보여준다(대통령 참모들의 발언엔 윤 대통령의 본심이 담겨 있을 터이므로). 

안 의원이 ‘윤‧안 연대’를 강조해온 것은 자신이 당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이 잘 뒷받침하겠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선거에서 우위에 서려는 것이겠지만, 그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 것을 과도하게 해석해 공격하는 것은 안 의원이 정치적으로 윤 대통령의 권위를 위협할 수 있는 ‘거물’로 크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안 의원이 당 대표가 된다고 해서 윤석열 정부를 든든히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안 의원도 역풍을 맞아 대권 도전의 길에 치명적인 장애가 될 것이다. 그러니 안 의원이 크는 것을 우려해 견제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그릇이 작음을 드러낼 뿐이다. 

지금의 흐름이라면 국민의힘 대표가 누가 되든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전당대회로는 누가 당 대표가 되든 다음 총선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 경우 윤 정부는 지금의 식물 정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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