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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이 좁은 나라에서 대기업인지 수도권인지 따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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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춘의 Re:Think]이 좁은 나라에서 대기업인지 수도권인지 따져야 하나!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3.02.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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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김용춘 전국경제인연합회 팀장/법학박사

반도체 전쟁, EU까지 6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원 투자
일단 대한민국이 지속 성장할 수 있어야 뭐라도 나누지 않겠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세계 각국이 반도체 기업 유치에 혈안이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정책에 제재를 가하면서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 맞서 독자적인 반도체 역량을 키우기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유럽도 이에 질세라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EU)는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6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반도체 강국인 대한민국 기업에게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2021년 미국에 투자 계획을 밝히자 텍사스주, 애리조나주, 뉴욕주 등에서 선물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왔다. 이 중 최종 선택된 텍사스주는 재산세 등 총 8300억원 감면, 전력·공업용수 공급 지원 등의 엄청한 혜택을 제시했다. 또한 2005년 현대차가 미국에 투자할 때 앨라배마주는 3750만 달러 짜리 공장부지를 1달러에 현대차에 이전해 주었으며, 고속도로, 상하수도, 가스 전기 등 각종 인프라를 정부 비용으로 설치해 준 바 있다.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김용춘 전경련 팀장/법학박사

만일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지방정부가 이런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할 권한도 없지만, 설사 제시한다 하더라도 대기업 특혜 시비에 휘말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어쩌다 해당 지자체가 우여곡절 끝에 투자를 유치하더라도 옆 동네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어차피 우리 동네에 올 것이 아니니, 송전선을 지하화해라, 공업용수로를 끊겠다, 주민을 위한 시설을 기부해라 등. 그런데 방금 예를 든 것들은 안타깝게도 실제 사례다.

만일 기업들이 선호하는 수도권에 대규모 투자를 하려한다면 만리장성보다 크고 단단한 수도권 규제에 막힐 것이다. 용도지역, 지구, 미관, 환경, 안보 규제까지 촘촘히 얽혀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의지를 갖고 풀 수는 있겠으나, 하나하나 풀어가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이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3년, 중국에는 2년이 걸리는 반면, 한국 평택에는 7년이 걸린 이유다. 한두달만 투자 시기를 놓쳐도 글로벌 순위가 바뀌는 것이 IT업계의 특성인데, 4년이라는 기간은 기업의 존망을 바꿀 수 있는 참으로 긴 시간이다.

여기에 지방의 반대는 덤이다. 안 그래도 수도권은 잘 사는데 왜 먹고살만한 대기업이 또 수도권에 짓느냐는 얘기다. 이런 논쟁까지 휘말리면 수도권 투자에는 하세월이 걸릴 수도 있다.

물론 지방 입장에서 수도권을 규제해야 한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수도권 규제가 도입된 1980년 초는 연 10% 안팎의 고도성장기였을 뿐만 아니라, 국제투자가 지금처럼 활발하던 때도 아니었다. 물류비도 비싸고, 관세, 정보부족 등으로 국가간 투자장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당시에는 수도권을 규제해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은 일정부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아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예전처럼 과잉투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소투자를 걱정하고 있다. 성장률 2%를 넘기는 것조차 힘겨워 보일 때가 많다. 수도권 대(對) 지방의 대결구도는 이미 한국 대 외국으로 바뀐지 오래다. 투자에 있어 국가 간 이동도 수월해 졌다. 오히려 해외로 가면 각종 인센티브에 극진한 대접까지 받으니 기업들로써는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실 우리나라가 땅이 넓은 나라는 아니지 않은가. 미국 뉴욕주만 해도 남한 전체 면적보다 40%나 크고, 서울·경기·인천 다 합쳐봐야 중국 북경시 면적의 3분의 2밖에 안 된다. 이런 좁은 나라에서 굳이 수도권, 지방 따지고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의문이다. 만일 싱가포르가 수도권과 지방으로 구분해 규제나 비판하고 있다는 소식을 우리가 듣는다면, ‘아니 저렇게 작은 나라가 무슨 수도권, 지방을 구분하고 있지’라고 생각할 것 같다.

이제는 수도권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과 같은 이분법적 접근보다 대한민국 경제라는 공통된 시각에서 판단했으면 좋겠다. 일단 대한민국이 지속 성장할 수 있어야 뭐라도 나누고 누리지 않겠는가. 성장 동력이 점점 꺼져가는 대한민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구분이 아니라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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