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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9] 문간에 한발 들여 놓기, 스몰 빅으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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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영의 서비스경영ㆍ9] 문간에 한발 들여 놓기, 스몰 빅으로 시작하라
  • 매일산업뉴스
  • 승인 2021.04.2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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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무급선원이 글로벌 기업인된 동원그룹 김재철 명예회장의 사례
최소한의 변화로 설득을 하고 최대의 영향력 끌어내는 것
사모아로 출어한 한국 최초의 원양 어선인 지남호에 부산 수산대학 졸업을 앞두고 실습 항해사로 승선한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동원그룹
사모아로 출어한 한국 최초의 원양 어선인 지남호에 부산 수산대학 졸업을 앞두고 실습 항해사로 승선한 동원그룹 김재철 명예회장. ⓒ동원그룹

한국전쟁 당시 많은 미군 포로들이 중국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중국 공산당은 가혹한 고문으로 포로를 복종시키는 북한군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포로를 다뤘다. 중국군은 특히 무자비한 태도를 피하고 이른바 ‘관용적’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사실 정교한 심리적 공격이었다. 

예를 들어, 포로들에겐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는 반미적이고 친공산주의적 발언들인 “미국은 완벽하지 않다.” “공산국가에는 실업문제가 없다”와 같은 언급을 요구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포로들이 이런 작은 요구를 수용하면, 이와 관련해 좀 더 실질적인 요구가 이어졌다. 미국이 완벽하지 않다는 동의를 얻어내면, 어떤 점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보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 

미군 포로가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얘기하면, 그런 ‘미국의 문제점’을 목록으로 작성해 서명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그리고 다른 포로들과 토론하는 동안 자신이 작성한 목록을 직접 읽도록 했다. 목록을 읽으면 “결국 당신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거지?”라는 식의 질문을 했고, 나중에는 작성한 목록을 더 확대하고 미국의 문제들을 더 자세히 논의해 보라고 요구했다.

그러고 나면 포로수용소 뿐만 아니라 남한의 미군들에게까지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그 포로의 실명을 밝히면서 그가 작성한 문서를 공개했다. 그 포로는 순식간에 적군을 돕는 협력자로 전락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군 포로가 위협이나 강제에 따라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의 자아 이미지가 그의 행동과 협력자라는 새로운 꼬리표에 맞도록 변했을 뿐이다. 

심리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전체적으로 협력을 거부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던 반면, 대다수가 한두 번에 걸쳐 자신에게는 사소하게 보이지만 상대방으로선 얼마든지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행위들로 중국에 협력행위를 했다. 이런 방법은 취조 중에 자백과 자아비판, 정보 등을 끌어내는 데 특히 효과적이었다”고 밝혔다.

비즈니스에서도 이 같은 방법은 자주 사용된다. 영업사원들은 작은 제품에서 시작해 점점 큰 제품으로 판매를 확대하는 것이다. 첫 거래의 목표는 이익을 보려는 게 아니다. 고객과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리 값싼 제품의 거래라도 상관이 없다. 고객을 첫 거래에 끌어들이고 나면 자연스럽게 더 큰 규모의 거래로 발전해간다. 일찍이 세일즈맨의 전문잡지 American Salesman은 이 점을 간결하게 설명해놓았다.

“전략의 핵심은 작은 주문에서 시작해 상품 전체로 판매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  이렇게 생각해 보라. 혹시 상대방이 전화 상담에 들인 시간과 노력에 전혀 못 미치는 작은 주문을 한다 해도 일단 주문한 이상 그는 잠재고객이 아니다. 진짜 고객이 된 것이다.”

이 전략은 자신의 가치를 몰라주는 취업시장에서도 통한다. 

무급선원으로 시작해 글로벌 기업인의 신화를 쓴 동원그룹의 김재철 명예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수산대 어로학과 출신으로 처음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지원을 해 퇴짜를 맞자 본사에서 내려온 임원의 여관방으로 찾아갔다. 일년 동안 무급으로 일하고 고생해도 원망하지 않으며 죽어도 상관없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남태평양 사모아로 출항하는 참치잡이 원양어선 지남호에 올랐다. 경험이 없는 지원자를 거절했던 회사를 상대로 열악한 계약조건의 ‘열정페이’를 먼저 제안했던 셈이다. 나중에 고려원양의 수산부장을 거쳐 동원그룹을 창업한 그가 출발점에서 경험했던 인력시장의 첫 거래는 이렇게 초라했다. 

작은 요구로 시작해 결국 이와 관련한 더 큰 거래를 성공시키는 이 영업기법을 ‘한발 들여놓기(foot in the door)'라고 한다. 밀리언셀러 ‘설득의 심리학(원제 INFLUENCE, 1984)’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 교수는 상대방에 대해 최소한의 변화로 설득을 하고 최대의 영향력을 끌어내는 것을 ‘스몰 빅(small BIG)'이라고 말한다. 고객을 설득하는 일관성의 위력을 이용하는 마케팅기법이다. 처음 찾아온 손님, 그와 사소해 보이는 거래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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