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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 증거인멸' 주장한 LG화학, 미 ITC에 왜곡된 자료 제출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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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 증거인멸' 주장한 LG화학, 미 ITC에 왜곡된 자료 제출 '의혹'
  • 이강미 기자
  • 승인 2019.12.01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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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후에도 조직적 인멸' 주장한 이메일 제시하며 '조기패소 판결' 요청
누락된 원문은 내부 의견 요청 ... 팀장의 삭제지시 부분만 노출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의 특허소송에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시했던 근거자료의 핵심내용이 의도적으로 왜곡· 편집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전기차용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화학이 미국 ITC에 SK이노베이션의 조직적 증거인멸 시도가 있었다며 제출한 근거자료의 핵심 일부를 왜곡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앞서 LG화학은 지난달 5일 "SK이노베이션이 소송 제기 전후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포렌식 명령도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등 법정모독 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하는 결론으로 조기에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LG화학은 요청서에서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인멸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근거들을 제시했다. 이 중 LG화학이 소송을 제기한 4월 29일 다음 날인 30일 새벽에 'FW : [긴급] LG화학 소송 건 관련'이란 제목의 이메일 원문과 영문번역본이 포함됐다.

이 이메일에는 '최대한 빨리 LG화학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는 내용이 쓰여있다. LG화학은 이를 토대로 "소송 제기 다음 날에도 자료 삭제를 지시하는 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증거인멸 행위를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메일의 전문과 원문을 보면 LG화학의 주장처럼 전사적으로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내용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이메일의 전문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경영 부서에서 유관 부서에 LG화학의 소송 사실을 알리면서 대응 방안 의견을 요청하는 것이 핵심이다. '[긴급] LG화학 소송 관련 건' 제목으로 "법무팀 외에 사업팀에서도 대외에 대응할 때 통일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므로 의견을 달라"는 게 원문의 내용이다.

해외에 근무 중인 배터리공장 건설 관련 부서 팀장 A씨는 이 메일을 받고 팀원들에게 원문을 전달(포워딩·FW)하면서 "각자 경쟁사 관련 자료를 삭제하라"는 본인의 메시지를 상단에 추가했다.

LG화학이 영업비밀 소송 제기일(4월29일) 이후에도 SK이노베이션이 조직적·체계적으로 증거인멸을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는 정황으로 제시한 4월30일자 SK이노베이션 사내 메일 발췌 화면. LG화학은 이 화면을 ITC에 11월5일 제출한 'SK이노베이션 조기패소 판결 요청서'에 담고 14일에 언론에도 배포했다. 자료/LG화학
LG화학이 영업비밀 소송 제기일(4월29일) 이후에도 SK이노베이션이 조직적·체계적으로 증거인멸을 지속한 것으로 보인다는 정황으로 제시한 4월30일자 SK이노베이션 사내 메일 발췌 화면. LG화학은 이 화면을 ITC에 11월5일 제출한 'SK이노베이션 조기패소 판결 요청서'에 담고 14일에 언론에도 배포했다. 자료/LG화학

그러나 LG화학이 미국 ITC에 제출하고, 언론 보도자료에 공개한 이메일에는 원문의 내용(사업팀 의견 취합)은 누락됐다. 바로 이 점이 LG화학이 증거자료로 제시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의심을 받게 하는 결정적 단서로 지적되고 있다.

LG화학이 ITC에 제출된 증거자료만 본다면 본사에서 긴급히 자료를 삭제하라고 보낸 메일을 팀장이 받고 해당 팀원들에게 전달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소송이 제기된 후에 회사가 조직적으로 증거 인멸을 시도한 것과 직원 A씨 개인의 행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때문에 LG화학이 자사에 유리하게 메일 원문을 뺀 화면으로 편집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번 소송 과정에서 LG화학이 법적 조치를 처음 경고한 2017년 10월부터 실제로 소송이 제기된 4월29일 이전까지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 관련 자료를 삭제하거나 삭제를 시도한 여러 정황들이 나왔다. 이 점은 SK이노베이션에게 불리한 정황이다.

그러나 LG화학이 '소송 이후에도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는 근거로 제시한 증거를 의도적으로 편집했다면 LG화학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와관련,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0일에 LG화학의 조기패소 판결 요청에 대응하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답변서는 증거인멸은 사실이 아니며 조기패소 판결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담은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ITC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입장, 불공정수입조사국의 의견서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결정을 내리게 된다. LG화학의 요청대로 SK이노베이션 패소라고 조기 판결을 하면 통상 절차인 예비판결 단계까지 가지 않고 최종 결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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